패러디(parody)란 ‘ 저명한 원작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모방’이다. 즉 모방, 변형, 풍자가 패러디를 이해하는 기본 키워드가 된다. 팝아티스트의 대가 래리 리버스(Larry Rivers )도 명화를 패러리한 작가중 한명이다. 1925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래리 리버스는 비구상, 설명이 필요없는 미술들을 시작한 최초의 작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쥬리아드 음대에서 수학한 뒤 술집에서 섹스폰을 불며 돈을 벌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시다 술집에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과 자주 어울렸든 래리 리버스는19세기 예술가 에마뉴엘 로이체의 대중적 아카데미즘 회화에 매료되어 대가들 그림을 주제로 삼아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네의〈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나는 검은 얼굴의 올랭피아를 좋아한다〉를 그릴 때는 올랭피아 옆에 흑인여인의 누드를 나란히 그렸다. 마네의 <올랭피아>역시 1863년에 티치아노의 유명한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주제로 사용하여 패러디한 작품으로서 비너스 대신 파리의 창녀 올랭피아를 그려 넣고 그 옆에 흑인 가정부를 등장시켜 놓은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국전에서 낙선해 낙선전에서 소개되었는데, 황제가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말해 주말이면 사람들이 문제의 그림을 관람하려고 전시장 밖에 줄을 섰다고 한다. 그러나 리버스는 창녀 올랭피아 대신 흑인여인의 누드로 새삼 충격을 주려고 하였든 것이다.
리버스는 한스 호프만과 NYU에서 미술 공부를 한 팝아티스트이다. 그는 일상 생활 속에서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모든 문화적 매체를 미술로 전환시켜나갔다. 1951년 뉴욕대를 졸업한 뒤 잭슨 폴락을 만났고 그뒤에 이어 죤 마이얼에 의해 그의 작품이 전시 되어졌다. 그 뒤 리버스는 티보 드 나기 갤러리에서 10년 동안 마이얼과 함께 매년 전시를 열었다. 그의 그림들은 뉴욕 스쿨에서도 아주 독특했는데 추상표현주의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팝아트라고 단정하기에는 팝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담배갑이나 지폐, 잡지사진 및 카드처럼 대량생산된 디자인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차용함으로써 팝아트의 태동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중간에 위치했으며 그의 개성은 팝에 보다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다.
평론가 죤 그루엔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이 반 추상주의, 반 구상주의, 팝아트, 후기 낭만주의, 또는 신고전주의등 많은 미술의 범주에 들어 갈 수 있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불려지든 관계없이 여전히 그의작품들이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미국사람들의 향수 섞인 대중적 이미지들을 예기치 못한 주제로 재현하여 신선한 느낌을 주었으며 추상표현주의의 이성적인 그림에 자신의 것을 대조시켰다. 초기 리버스는 주로 누드를 그리면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1955년에 그린 〈버디의 이중 초상화〉는 장모의 누드 두 점을 그린 것으로 마치 한 화면에 두 사람의 누드가 병렬된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해서 말년의 르노아르가 한 여인의 누드를 나란히 병렬시켜 두 여인의 누드인 것처럼 그린 것을 연상시키고 있다.
비록 래리 리버스가 평론가들에게는 유행되고 있는 미술 운동에 반항하는 작가로 보여졌지만 잭크린 소월의 말처럼 아직까지도 현대미술에서 일정기간 동안 수용되어질 수 있었든 그의 파괴적인 생각들이 진정한 혁신자로서 그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렌지덴트
On the phone, 1995
마티스의 춤을 패러디
아프리카
카멜
Fashion seated, 2001
